아름다운 고장 칠곡 왜관읍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관광지

칠곡왜관철교

칠곡왜관철교
  • 소재지 :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872외
  • 연락처 : 054)979-6452 (새마을문화과)
  • 소유자 : 국유 (국토해양부)
  • 건립일 : 1901년 8월 착공, 1905년 1월 1일 개통
  • 수량(면적) : 철골 콘크리트조, 길이 469m, 폭 4.5m, 높이 8m

이 다리는 일본이 대륙침략을 위해 부설한 경부간 군용철도의 교량이다. 경부선 철도는 1901년 8월에 착공하여 한국 노무자와 학생들을 동원, 3년여만에 445㎞의 단선(單線)을 완공하고 1905년 1월 1일에 개통, 부관연락선(釜關連絡線)으로 일본과 연결되었다.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군수물자의 신속한 수송을 위해 경부선 423㎞를 복선화(複線化)하면서 1941년 11월 30일 507m의 새로운 복선철교를 상류쪽에 가설하고 이 철교는 경부간 국도의 인도교(步車道)가 되었다.

6·25전쟁시 적 도하 방지를 위해 1950년 8월 3일 폭파된 경간(經間)은 그 해 10월 총반격때 침목등으로 긴급 복구한 이후 계속 인도교로 활용해 왔다. 1970년 11월 바로 위쪽에 경부간 국도의 왜관교(길이510m, 폭13.5m, 높이7.2m 시멘트콘크리트조)를 새로 가설한 후에는 인도교로 이용했으나 그간 복구 부분이 너무 노후하여 1979년 11월부터는 통행을 전면 차단하였다. 이 다리는 관리하는 철도청에서는 철거를 검토하였으나 호국의 상흔(傷痕)을 간직한 이 다리를 보존하자는 郡民들의 의사를 수렴, 칠곡군이 무상관리 승인을 받고 91년 8월부터 93년 2월까지 6억1천만원(도비4억, 군비2억1천만)원을 투입하여 교각 1기 신설, 상판 63m 복구, 트러스 도색, 난간보수, 교면 및 접속도로를 포장하여 복구함으로써 '호국의 다리'로 명명되어 전쟁과 호국의 산 교육장으로서 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人道로 활용되고 있다. 이 다리가 어떻게 하여 호국의 다리로 불리게 되었는지 6·25전쟁시 왜관 일대의 전황을 자세히 살펴보자.

대구와 부산이 함락위기에 놓였던 1950년 8월 1일,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최후의 방어선(워커라인, 낙동강 교두보)을 구축하고 격전을 벌이게 되는데 이 곳 왜관 일대는 그 중심지였다. 이에 따라 그 해 8월 3일 왜관 전 주민의 소개령(疏開令)이 내렸고 낙동강 방어선의 교량들은 적 도하방지를 위해 8월 4일 새벽까지 모두 폭파되었는데 이 때 왜관 인도교도 폭파되었다. 낙동강 방어선에서 왜관(자고산, 303고지) ~ 현풍까지 40㎞(하천거리 56㎞)구간을 담당하던 미제1기병 사단장 게이(Hobert Raymond Gay)소장은 휘하 부대가 김천에서 왜관으로 철수완료하면 작전상 한강교와 버금가는 왜관 낙동강 인도교를 폭파하여 전차를 앞세운 적의 남진을 저지할 계획이었다. 낙동강 연안의 왜관에는 김천~대구간 4번 국도를 잇는 유일한 인도교를 통해 많은 피난민과 군인들로 붐볐다. 7월 중순까지만 해도 수십만의 피난민들이 내려와 있었는데 다 하순부터는 하루에도 25,000명 이상이 낙동강을 건너 좁은 아군지역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피난민들이 길을 메워 군의 작전 기동력에 장애도 되고 특히 적 게릴라들이 피난대열에 끼어 들어와 아군을 교란시키는 사례가 많았다(유엔군은 당시 게릴라 총병력을 약 3만, 핵심 조직요원은 5천명으로 판단했으며 8, 9월중 4천명을 소탕했다). 이 때문에 낙동강 방어선에는 적 게릴라 침투를 막기 위해 부득이 진지점령에 앞서 강안(江岸)으로부터 8㎞이내에 거주하는 전 주민들을 소개시켰다.

8월 3일, 아침부터 경찰서 사이렌이 울리고 전단과 확성기로 '오후 6시까지 지시된 지역에서 퇴거하지 않는 주민은 적으로 간주하여 사살한다.'라는 내용을 포고하자 왜관 일대 주민들은 황망히 피난짐을 쌌다. 이날 따라 왜관역에는 마산으로 이동하는 미제25사단 병력수송열차가 들어서 있었다. 때때로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피난민들은 화차에 타기도 하면서 봇짐행렬이 줄을 이었다.

유엔군은 피난민들이 인도교를 건너 소개지역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게이 소장은 다리 근처에서 부대철수를 지휘하고 있었다. 인도교 건너편에는 수천명의 피난민들이 도강기회를 보고 있다가 3일 해질 무렵 뒤편의 미제8연대가 마지막으로 다리를 건너려 하자 뒤따라 몰려왔다. 사격위협을 해도 필사적으로 따라 오는데는 어쩔 수 없어 폭파시기를 놓쳐버렸고 그사이 날은 저물어 드디어 적의 사격이 시작되었다. 폭파시기 판단은 게이소장의 생애중 가장 어려운 결단이었다. 1950년 8월 3일 오후 8시 30분, 굉음과 함께 인도교와 복선철교 각 1구간이 폭파되었다. 어둠이 짙어진 밤하늘에는 불꽃놀이 하듯 파편이 날면서 트러스와 상판이 무너져 내렸는데 총길이 469m중 왜관쪽 둘째경간 63m가 끊어졌다.

뒤에는 적이 밀려오고 막다른 처지에 몰린 피난민들은 수심이 얕은 곳으로 몰려 갔다. 짐스러운 것은 버리기까지 하면서 군의 제지를 피해 강을 건넜는데 등에 업은 아이가 익사하는 줄도 모르고 건넌 부녀자등 정신없이 강을 건너는 가운데 희생자가 많이 속출하였다. 적은 전차가 건너올 수 없어 일단 강 서편에 집결하고 미제1기병단은 8월 4일 아침까지 강 東岸에 진지구축을 완료했다. 이후 적은 모래 가마니를 깔아 전차 도하를 여러번 시도했으나 아군의 포격으로 번번이 좌절되었다. 8월 16일에는 B29 전투기 98대가 강 건너편 일대 67㎢에 26분 동안 90톤이나 되는 폭탄을 떨어뜨려 인민군 4만명중 3만여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융단폭격 작전으로 세계전사에 기록되어 있다.

왜관을 빼앗길 경우 대구는 북한군의 야포 사정권안에 들게 되며 부산까지 밀리게 되므로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중심으로 다부동전투와 함께 필사적으로 전선을 지켜 북한군에게 큰 타격을 줌으로써 전세를 역전시키고 반격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렇게 하여 우리 칠곡군은 '호국의 고장'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지금은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 살기좋은 고장으로 발돋움해 있다.

찾아오시는길

  • 버스이용시 : 대구 북부시외버스터미널(왜관행)→왜관북부정류장→왜관리→호국의다리
  • 자가용이용시 : 경부고속도로(왜관 IC)→왜관읍소재지→호국의다리

성베네딕도왜관수도원

성베네딕도왜관수도원
  • 소재지 : 칠곡군 왜관읍 관문로 61
  • 연락처 : 054-970-2000

1909년 독일 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수도원으로부터 5명의 수도자가 서울에 파견되어 교육사업을 펼친 것을 시작으로 북한에서 선교와 사회사업을 펼쳤다.

북한이 공산화되면서 수도원이 폐쇄당하고 30여 명의 수도자가 피살, 옥살되어 박해를 피해 1952년 왜관에 자리 잡은 후, 교육, 복지 등 활발한 사회사업을 펼치고 있다. 피정의 집에서 피정 숙박을 할수 있기도 하다.

피정

피정이란 천주교 신자들이 자신의 영신 생활에 필요한 결정이나 새로운 쇄신을 위해 어느 기간동안 일상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묵상과 자기 성찰기도 등 종교적 수련을 하는 것을 말한다.

찾아오시는길

  • 버스이용시 : 대구 북부시외버스터미널(왜관행)→왜관남부정류장→성베네딕도왜관수도원
  • 자가용이용시 : 경부고속도로(왜관IC)→왜관읍 왜관리→성베네딕도왜관수도원

구상문학관

경북 유일의 문학관으로 구상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구상 선생(1919 ~ 2004)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부터 왜관에 정착하여 22년간 왕성한 문학활동을 펼쳤다. 프랑스 문인협회가 선정한 세계 200대 문인으로 우리나라 현대문학사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200여평 규모의 2층 건물로 1층에는 사진과 편지, 서화 등이 전시되어 있고, 2층에는 시인이 기증한 2만여권의 도서가 보관되어 있다. 또 시인의 창작활동과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모였던 관수재가 있어 시인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

기본현황

  • 소재지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구상길 191 (우) 718-807
  • 연락처 : TEL. 054-979-6447
  • 휴관일 : 월요일, 법정공휴일

설립목적

세계 200대 문인반열에 오른 구상 선생의 선양과 한국시문학에 끼친 업적을 보존하고 20년간 거주하며 창작활동을 한 관수재를 복원하여 시인의 삶과 문학과 구도자적 정신세계를 영원히 이어가고자 함

연혁

  • 2002. 10. 4 구상문학관 개관

주요업무

  • 구상문학에 관한 자료수집, 보존, 전시, 열람
  • 문학의 조사, 연구, 문학강좌
  • 도서관 업무에 관한 사항
  • 기타 문학관 및 도서관으로서의 기능 수행에 필요한 사항

시설현황

규모
  • 부지 1,611㎡(487.33평), 건물 699.87㎡(211.71평)
  • 문학관 1동(2층), 관수재 1동
용도별건축면적 (단위 : ㎡)
용도별건축면적
관수재 1층 2층
전시실 사무실 로비 기타 도서관 열람실 사랑방 기타
22.03 234.9 29.1 58.32 77.69 102.06 77.76 43.74 54.27
구조 : 철구조벽(Posco, steel house system)
사업기간 : 2001. 3. 13 ∼ 2002. 7월
사업비 : 2,260 백만원(국비 1,000, 군비 1,260)

칠곡문화원

시설 소개

  • 소 재 지 : 칠곡군 왜관읍 2번도로길 23
  • 전화번호 : 054-974-0450
  • 팩스번호 : 054-974-5035

설립목적

21세기 새로운 시대를 맞아 우리 칠곡 문화 가족들과 함께 전통문화를 계승하기 위한 옛 문서를 국역, 보급하고 새로운 문화 보급을 위한 문화학교 교육과 문화탐방 등 자랑스러운 칠곡군민으로서의 긍지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쾌적한 문화환경 조성코자함.

연혁

  • 1968. 5. 24 사단법인 칠곡문화원 창립총회
  • 1994. 8. 16 지방문화원 설립인가(제92호)
  • 1998. 3. 6 문화관광부장관(제177호) 한국문화학교 지정

주요업무

  • 문예백일장, 지역축제개최
  • 전통세시풍속체험 프로그램
  • 향토사료수집
  • 맥심정기전, 계명시화전, 낙동분재전, 낙동수석전 개최
  • 문화학교 운영 전통민요
  • 임원우수문화탐방, 문화유적지 탐방 등

본문 콘텐츠 담당자, 최종수정일

담당자
미래전략과김은정054)979-6093
최종수정일 :
201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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